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8만원 세대 (문단 편집) === 88만원 세대는 투표율이 정말 낮았는가? === 20대 개새끼론이 나왔단 [[17대 대선]]에서, 딱 20대(78년생~87년생)는 유독 투표율이 낮았던 게 엄연한 사실이다. [[https://image.newsis.com/2012/12/19/NISI20121219_0007490548_web.jpg|15대~17대 대선 투표율]] [[https://image.newdaily.co.kr/site/data/img/2012/12/19/2012121900087_0.jpg|18대 대선 투표율]] [[김대중]] 대통령이 당선된 [[15대 대선]](1997년)의 20대는 1968년 ~ 1977년생이 20대였으므로, 20대의 일부는 [[386세대]]의 끝자락 세대(1968~1969년생)에[* 단, 1969년생은 전두환 정부가 물러나고 6공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1988년 이후에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386세대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으며 실질적인 386세대의 끝자락은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 시절 마지막 학번인 87학번/1968년생까지로 본다.]가 포함되었고 대다수는 [[X세대]]였다. [[노무현]] 대통령이 당선된 [[16대 대선]] 투표 당시에는 1973년~1982년생이 20대였다. 그러나 이 또한 대단히 왜곡에 가까운데 1997년 15대 대선 이후 2000년대엔 한국의 전연령층 투표율은 감소했다.[[https://mobile.newsis.com/view.html?ar_id=NISX20121219_0011700699|#]] 심지어는 투표에 적극적이었다는 86세대는 연령이 증가할수록 투표율이 급락했으며, 가장 투표율이 높은 노년층의 투표율도 소폭 감소했다.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한 세대만 똑 떼어서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편견을 두고 자료를 해석하는 것이다. 이것이 반전된 계기는 18대 대선 박근혜 문재인의 치열한 양자대결, 이후 박근혜 탄핵 등을 겪으며 정치의 시대가 다시 돌아온 때문이다.[[https://m.mt.co.kr/renew/view.html?no=2017090615497666656|#]] 이때는 전 연령 투표율이 증가했다. 20대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대학 등록금이 폭등했었다.[[https://img.hankyung.com/photo/201311/01.8077901.1.jpg|1998년~2011년까지 대학등록금 증가율]] 물론, 대학 등록금을 올릴 수 있게 만든, 사회적 책임은 간과할 수 없고 등록금 올린 책임은 학생보다는 재단이나 사회구조 문제가 더 큰 문제지만, " 당시 대학생들은 등록금 협상조차 하려는 생각이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."라는 서술은 거짓이다. 당시 등록금 투쟁과 그리고 관련된 단식이나 총장실점거는 연례행사였다. 매년 나오는 기사를 한 번 살펴보자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05&aid=0000089617| 2002년 대구경북지방 대학 등록금 갈등]]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09&aid=0000365005| 2004년 등록금 투쟁에 따른 총장님들의 피신]]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79&aid=0000028028| 순천대 단식투쟁]]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22&aid=0000084051| 2005년 대구경북지방 대학 등록금 투쟁]]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01&aid=0001204678| 2006년 사립대 등록금 관련 갈등]]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38&aid=0000362467| 2007년 등록금 전운]]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22&aid=0000210770| 서울대 첫 등록금 납부 거부운동]] [[노무현 정권]] 당시 등록금을 주도적으로 올린 곳은 국립대이다. 국립대가 미친듯이 올리고, 사립대는 그 인상률을 따라가지도 못 했다. [[https://newstapa.org/article/y03I3 |참조기사]] 반값 등록금 투쟁과 같은 명확한 아젠다가 없었고 전국적 규모가 아닌 지역적 대학별로 산발적 투쟁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협상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는 말도 안 되는 서술을 해서는 안 된다. 대학등록금의 미친 인상률 조차도 협상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. 당시 정부는 등록금 자율화 명분[*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01&aid=0000087937| 2001년 정부 이후 20%씩 대학 등록금 인상 계획]]]으로 했고, 국립대학 등록금도 사립대 수준으로 올릴 생각을 했었다.[*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47&aid=0000064420| 김진표 부총리 "국립대 등록금, 사립대 수준으로 올려야"]]] 대학 등록금 인상의 고삐를 풀고도 반값 등록금 투쟁에 나섰던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. 이 당시 등록금 인상을 주도한 경제부총리가 [[김진표(정치인)|김진표]]. 이 양반은 '''[[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 생각을 했어요|국립대도 사립대처럼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는 개소리를 시전했다가]]''' 참여정부를 나락으로 내몰았다. 일부 강경 친노들은 "당시 서울시장이였던 [[이명박]] 보다도 못한 김진표의 그 멍청한 발언 때문에 참여정부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"이라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.[* 실제로 이명박은 이걸 이용해서 등록금 반값을 꼭 실현하겠다는 공약을 내밀고, 2030의 압도적인 지지에 힘입어 당선되었다. 당시 정동영은 역대 민주당계 정당의 대선후보 중에서 '''어떤 나이대에서도 앞서지 못 하고 패배한 유일한 기록을 작성했다(...)'''] 그때나 지금이나 2040세대에게 충격파가 컸으며, 김진표는 훗날 [[문재인 정부]]에서 이낙연의 후임 국무총리로 지명됐으나, '''민주당 내에서까지 반발이 일어나자''' 스스로 고사하고야 만다. --사실 그때 그 꼬라지와 정부 지지층을 생각했더라면 김진표 지명은 치명적 실책 그 자체--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